“역시 버핏답다” 폭락장서 빛난 보수적 투자 철학
글로벌 증시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관세 폭탄 발언으로 연일 요동치는 가운데, 투자계의 살아 있는 전설, 워런 버핏의 투자 전략이 다시금 조명되고 있다.
시장 전반에 ‘공포 지수’가 급등하고 패닉 셀링이 이어지는 상황에서도 버핏은 그의 특유의 보수적이고 일관된 접근 방식을 통해 여전히 견고한 수익률을 유지 중이다. 투자자들이 혼란에 빠질수록 그의 전략이 오히려 더욱 돋보이는 것이다.
워런 버핏, 혼돈 속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는 ‘오마하의 현인’.
유일하게 200일선 지킨 ‘버크셔 해서웨이’
2024년 4월 초, 뉴욕 증시는 팬데믹 이후 가장 큰 낙폭을 기록하며 세계 금융시장을 뒤흔들었다.
S&P500지수는 −4.84%, 나스닥은 −5.97%, 다우지수는 −3.98%로 각각 폭락했고, 기술주의 대표 주자인 애플은 하루 만에 무려 9.3% 급락하며 투자 심리에 큰 타격을 입혔다. 단 이틀 사이 6조6000억 달러(한화 약 8,950조 원)의 시가총액이 증발하면서, 그야말로 ‘공포의 이틀’로 기록됐다.
그러나 이와 같은 패닉 속에서도 워런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 해서웨이는 놀라운 안정성을 보였다.
클래스B 기준 주가는 4일 종가 530.16달러로 −1.41% 하락에 그쳤으며, 연초 대비 약 10%의 상승률을 유지 중이다.
특히 미국 시가총액 상위 10개 종목 중 유일하게 200일 이동평균선 위에서 거래되고 있어, 시장에서 ‘안정적 자산’으로의 재조명을 받고 있다.
에버코어ISI의 수석 전략가 리치 로스는 이에 대해 “200일선이 시장의 모든 것을 설명하진 않지만, 심리를 반영하는 중요한 기준선인 것은 분명하다”며 “버크셔는 현재의 혼란 속에서 확연히 다른 주가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산업재 중심 사업 구조와 거대한 현금이 핵심
전문가들은 버크셔 해서웨이의 이런 안정성이 단순한 ‘운’이 아니라고 말한다.
산업재·보험 중심의 견고한 사업 구조, 그리고 위기 시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는 막대한 현금 보유량이 그 비결이다.
버크셔는 2023년 말 기준 약 3,340억 달러(약 490조 원)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어, 시장 충격 시에도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여유를 지니고 있다.
리트홀츠 웰스 매니지먼트의 CEO 조시 브라운은 “버크셔는 트럼프의 돌발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관세 정책에도 흔들리지 않는 몇 안 되는 기업 중 하나”라며,
“미국 경제에 넓게 노출돼 있지만, 백악관의 입김에 좌우되지 않는 독립적 체격을 갖추고 있다”고 분석했다.
‘관세 전쟁’이라는 혼란 속에서도 유일하게 200일선을 지킨 버크셔 해서웨이 주가 차트.
기술주 고점 회피…국채와 현금으로 전환
버핏은 팬데믹 이후 시작된 기술주 랠리 중에도 비판을 감수하며 점진적으로 포트폴리오를 조정해 왔다.
한때 버크셔의 대표 종목이었던 애플은 포트폴리오 비중의 5.6%를 차지할 정도로 무게를 뒀지만, 시장 과열 조짐이 보이자 비중을 축소하고 리스크 분산에 집중했다.
이후 버핏은 단기 국채 및 현금 자산 비중을 늘리는 쪽으로 전략을 선회했다.
그 결과, 2024년 들어 본격화된 기술주 중심의 조정장에서 비교적 피해를 덜 입으며 수익 방어에 성공했다.
파이낸셜타임즈는 이에 대해 “버핏은 상처 하나 없이 이번 급락장을 빠져나온 거의 유일한 인물”이라며
“보수적이지만 일관된 투자 철학이 위기 속에서 더욱 빛났다”고 평했다.
밈과 현실 사이, ‘현실 진도준’이라는 찬사
버핏에 대한 재조명은 국내 투자자들 사이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내가 수십 년간 시장에서 얻은 교훈을 다 알려줬다”는 워런 버핏 밈이 다시 확산되고 있으며,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속 주인공 ‘진도준’에 빗대어 “현실 진도준은 역시 버핏”이라는 농담 섞인 찬사가 쏟아진다.
특히, 폭락장 직전에 버크셔가 과감하게 현금 비중을 높인 판단은 당시에는 비판받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위기 대응에 성공하며 투자자들의 신뢰를 되찾고 있다.
국내 투자자들 사이에서도 다시 주목받는 워런 버핏 밈. 위기 때 진짜 실력이 드러난다.
“진짜 위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
한편, 블랙스완 투자로 유명한 마크 스피츠나겔 유니버사 인베스트먼트 CIO는 이번 증시 폭락에 대해 “진짜 아마겟돈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지금의 급락은 단지 공포성 투매일 뿐이며, 진짜 폭락장은 거품이 터질 때 온다”고 말하며, 현 상황이 오히려 역발상 매수 시점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스피츠나겔은 2020년 팬데믹 당시 4000% 수익률을 기록했던 블랙스완 전략의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는 “연준이 금리 완화로 시장을 떠받치고 있기 때문에, 아직 본격적인 조정은 오지 않았다”며 투자자들에게 장기적 안목을 강조했다.
다시 주목받는 가치투자의 힘
결국, 이번 증시 변동성 속에서도 살아남은 전략은 가치투자에 기반한 보수적 전략이었다.
워런 버핏의 투자 철학은 단기 수익보다는 장기적 안정을 추구하며, 위기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신념을 바탕으로 한다.
시장은 언제나 예측 불가하고, 트렌드는 빠르게 바뀌지만, ‘본질’을 보는 투자자만이 끝까지 살아남는 법이다.
폭락장은 공포의 시간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진짜 투자자의 철학이 시험받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번에도, 워런 버핏은 그의 철학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증명해 보였다.